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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문천상계
*문천상계
송나라 말에서 원나라 초기(서기 1276년) 선유 문천상(서기1236년~1282년,남송 말기 사람)은 원나라 군에 대항하여 광동성(廣東)조양(潮陽)에 군대를 주둔하였으나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 대도(大都)「지금의 북경(北京)」에서 감옥에 수감되었다. 문천상은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정기가: 正氣歌)를 지어 사형에 처할때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옥중에 있는 동안, 자주 감옥을 오가던 한 노인이 옥리의 도움으로 사기그릇에 물、술、식용유 등을 섞어 만든 삼배계(三杯鷄)를 문천상에게 주었다고 한다. 문천상이 죽은 후, 옥리는 고향 강서성으로 돌아와 문천상이 죽은 매년 12월 9일에 삼배계를 만들어 그를 추모하였다. 이때부터 각지로 전해졌다.
주석: 선유 문천상은 공묘 대성전 동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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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쌍교
*고정쌍교
공묘 대성전에서 모시고 있는 십이철(十二哲)중 유일하게 공자의 제자가 아닌 사람은, 후대에 「주자」로 받들어진 주희(서기 1130년~1200년, 남송시대 사람)이다. 그는 중국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사상가이다. 살아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연구와 저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송나라 임홍(활동년도 미상)의 《산가청공(山家清供)》안에 「고정한(考亭蔊)」에 관한 이런 부분이 있다, 「고정선생 매음후 즉이한채공. …공소공, 개건양종…(考亭先生每飲後,則以蔊菜供。…公所供,蓋建陽種。…)」。주희가 건양(建陽)에서 연구할때 선유들은 그를 고정선생이라 불렀다. 한채(蔊菜)가 바로 비름이다. 효능은「온몸의 구멍을 막힘없이 통하게 하고」,「좋은 기운을 불어넣고 피를 보충한다」 또한 여러가지 음식재료로 쓰인다. 주희는 자주 이 음식을 먹곤하여 생각에 막힘없이 명쾌하고 뚜렷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겨 「삼국시대(하나라、상나라、주나라[夏、商、周])이래로 공자와 견줄만 하다」라는 칭송을 듣는다.
주석: 십이철 주희는 공묘 대성전 정전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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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회과육
*한림회과육
과거 공자 제사를 지낼때 돼지를 통째로 놓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치고, 사자(남자의 호칭, 젊은사람을 일컬음)들이 그 고기를 나누어 집으로 가져가서 먹었다.「계랭저육:喫冷豬肉」이라고 불렀는데 푸짐하게 먹기 위해 쓰인다. 사천사람은 제사에 올린 후 다시 데워서 먹기에「회과육<回(會)鍋肉>」이라 부른다. 보통 물에 삶거나 살짝 구워서 끓는 기름에 볶는다. 청나라 말기(서기 1897년~1927년)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 능씨 성을 가진 한림(당나라 시대에 신설된 관직이름)이 있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할때 요리방법을 골돌히 연구하였다. 먼저 삶거나 먼저 구운 후 다시 볶는 회과육을 껍데기가 부드러워질때까지 쪄서 익으면 다시 볶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이런 「한증(旱蒸)」방법으로 만든 회과육은 금성(錦城)지역에서 유명했고,사천지역으로 전해지면서「한림회과육」으로 불려졌다.
주석: 공자는 공묘 대성전 정전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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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철죽
*군신철죽
남송말기(서기 1276년) 수도가 함락되고 임금과 신하가 황급히 도망쳤으나 원군은 끝까지 쫓아가 살해했다. 승상이 된 선유 육수부(서기1237년~1279년)는 새로 제위에 오른 어린황제인 조병(서기1271년~1279년 남송말기 황제)을 데리고 복건성(福建) 장주(漳州)로 도망쳤다. 먹을 식량이 없어 한 부잣집 주인에게 구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부자가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을 보고 한 무리의 거지로 오인했다. 원래 준비해 두었던 고양이에게 먹일 남은 음식을(그지역 사투리로’고양이죽’이라고함) 그들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그들은 가리지 않고 모두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그 뒤 어주(御廚:황제의 요리사)가 직접 장주를 방문하여 조사한 결과, 드디어 성공적으로 「고양이죽」을 만들었고, 어린황제의 표창을 받아 이때부터 여러지역에 전해지게 되었다. 사실상 고양이죽은 일종의 모둠죽이다. 야채,육류,어류에 구애받지 않아 재료가 풍부하고 조리법이 정교하며, 불의 세기와 타이밍이 중요하고,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맛과 향이 좋으며,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주석: 선유 육수부는 공묘 대성전 서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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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시지계
*관시지계
육축중에 유일하게 다리가 두개인 것은 새벽을 알리는 닭이다. 송(宋)나라 사대부인 대영지(戴盈之)(활동년도 미상, 전국시대[戰國時代] 사람)가 맹자(기원전372년~기원전289년, 전국시대 사람)에게 말하기를:「공자의 의견을 따라 소득의 10퍼센트를 과세로 부과하는 옛법을 적용하여 관시의 세금을 매기려고 하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올해는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내년에는 새로운 제도로 개정할 것입니다.」맹자가 대답하기를:「한사람이 매일 이웃의 닭을 한마리씩 훔쳐 어떤사람이 그에게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말했더니 그사람이 『그럼 매달 한 마리로 바꾸고 내년이 지나면 다시는 훔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네. 지금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만둬야지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맹자는 닭을 훔치는 것을 비유하여 당시 황회(黃淮)지역에 닭을 기르는 것이 보편적이었음을 알수 있다.
선진시대(先秦時代)에는 닭을 먹는 방법은 대부분 굽거나, 국으로 끓여 먹거나, 소금에 절이거나, 부쳐먹는 등의 방법을 이용했다.
주석: 아성 맹자는 공묘 대성전 정전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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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초어
*양명초어
선유 왕수인(서기1472년~1528년, 명나라 사람), 스스로 양명자라 불렀고, 학자들은 그를 양명선생이라고 부른다. 그가 강서성(江西)여릉지현(廬陵知縣)을 관리할때 생선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감주(贛州)에 생선요리를 잘하는 어떤 요리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자기집 요리사로 모셔왔다고 한다. 요리사는 생선요리를 할때 창의적이고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어 수인의 환심을 샀다. 어느날 생선요리를 할때 식초를 많이 뿌렸더니 맛이 훨씬 좋았다. 수인은 먹다말고 음식이름을 물었다. 생선에 小酒(식초)를 넣어 볶은 것이라서 요리사는 아무 생각없이 「소초어(小炒魚)」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이 음식은 강서(江西)지역의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소초어를 만들때 반드시 민물고기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강남(江南) 「4대민물양식어류」중 청어,초어(산천어)로 만든다.
주석:선유 왕수인은 공묘 대성전 서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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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쌍병
*제갈쌍병
선유 제갈량(서기181년~234년, 삼국시대 촉한 사람)이 남정소(南征所)에서 발명하여 널리 보급한 두가지 음식이 있는데 후대에까지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는 지금까지 중국 북방사람들의 주식인 찐빵과, 다른 하나는 「제갈채(諸葛菜)나 대두채(大頭菜)라고 부르는 순무이다. 찐빵(饅頭)은 안에 소가있는 빠오즈(包子)와 할포(거빠오「刈包」)도 포함된다. 이외에 이시진(서기1518년~1593년, 명나라 사람)이 「음식중에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비유한 순무는 남북에 모두 있고, 북쪽에 더 많다. 봄에는 새싹을 ,여름에는 알맹이를, 가을에는 줄기를, 겨울에는 뿌리를 먹고, 이렇게 사시사철 모두 먹을 수 있다. 또한 흉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얀찐빵과 같이 먹거나 하얀찐빵 사이에 끼워넣는 반찬이라면, 운남(雲南)지역 전통음식인 「장미 대두채 고기채 볶음(玫瑰大頭菜炒肉絲)」를 최고로 뽑는다.
주석:선유 제갈량은 공묘 대성전 서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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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두부
*장진두부
주희(서기1130년~1200년, 남송시대 사람)는 학술상의 업적은 「광범위하고 심오한것」에 있고, 「오랜세월 존경받는 인물」로 일컫는다. 그의 심오함은 사물의 이치를 명확히 밝히는 것에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주희를 조롱하기 위해 쓰인다. 「주희가 어느날 두부를 만들 콩,물과 다른재료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보고 완성된 두부의 무게를 달아보았더니 완성된 두부의 무게가 완성 전의 무게보다 무거웠다.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던 주희는 원인을 찾지 못해 아예 두부를 먹지 않았다.」 사실 주희는 두부를 좋아하였다. 각종 두부요리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재미있는 것은 두부장진(豆腐藏珍)이다. 옥함니(玉涵泥)、삼하두부(三蝦豆腐)나 양두부(瓤豆腐)를 막론하고 창의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주석: 십이철 주희는 공묘대성전 정전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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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군자어
*기군자어
춘추시대(기원전770년~기원전476년)에, 어떤 사람이 선현 자산(즉 박학다문한 공손교, 활동년도 미상, 춘추시대 사람)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선물하였다. 자산은 연못지기에게 물고기를 연못에 놓아 기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연못지기는 물고기를 삶아 먹고 돌아와서 「처음에 놓아주었을 때에는 힘없이 움직이더니 잠시후 꼬리를 퍼덕이며 유유히 헤엄쳐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자산에게 말했다. 자산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갔군, 있어야 할 곳으로 갔어(得其所哉 得其所哉)」라고 말했다. 연못지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했는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어 먹었는데도 그는『있어야 할 곳으로 갔어』’라고 말하다니」 라고 말했다. 선진(先秦)시대(기원전221년 이전) 생선을 요리하는 방법은, 삶아서 먹거나, 회로 먹거나, 구워 먹거나, 탕으로 먹거나, 절여서 먹었다. 요리법은 아주 많고 다양하다.
주석: 선유 공손교는 공묘 대성전 동무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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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궤돈
*양화궤돈
돼지고기는 가장 보편적인 음식이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전 중국 화북지역에서는 돼지고기가 주된 음식이였다. 춘추시대(기원전770년~기원전476년) 노나라의 사대부 양화(陽貨)는 공자(기원전551년~기원전479년, 춘추시대 노국 사람)를 만나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삶은 새끼돼지 한마리를 선사했다. 공자는 그들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고 일부러 그가 집에 없을 때 찾아가 사례를 했고 서로 만나지 않게 피했다. 결국에는 두사람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이일에 관한 <논어>와<맹자>의 기록을 보면 서로 다른 관점으로 기록해 흥미롭다.
선진(先秦)시대(기원전221년 이전)에 돼지고기를 먹는 방법은 여러가지인데 쪄서 먹거나, 회로 먹거나, 구워 먹거나, 말려서 육포로 먹거나, 탕으로 먹거나, 절여 먹거나, 삶아 먹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들어 먹었다.
주석: 공자는 공묘 대성전 정전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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